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라예보 사건 (문단 편집) === 대세르비아주의의 대두 === 제12차 [[러시아-튀르크 전쟁]]이 끝나고 패배한 [[오스만 제국]]은 1878년 [[베를린 회의]]로 슬라브계 민족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발칸 지역을 잃었다. 기존에 오스만의 봉신국이었던 [[세르비아 공국]], [[루마니아 왕국]], [[불가리아 공국]][* 이후 1908년에 [[불가리아 왕국|왕국]]으로 국체를 변경했다.]은 완전히 독립했고 [[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]] 지역은 형식상 오스만의 영토로 남았으나 실질적으로는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에 [[보스니아-헤르체고비나 공동통치령]]이라는 이름으로 합병되었다. 당대 여느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[[세르비아 왕국(1882년~1918년)|세르비아 왕국]]은 때마침 [[내셔널리즘|민족주의]]의 열기가 꽃피기 시작했다. 문제는 세르비아뿐만 아니라 보스니아는 물론이고 헝가리 남부의 보이보디나에도 세르비아인들이 살았다는 점이었다. 세르비아인들의 입장에서 형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보슈냐크인들과 크로아티아인들, 더 나아가 슬로베니아인들은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 남서부에 넓게 분포했다. [[범슬라브주의]]의 영향을 받은 '''대세르비아주의'''자들은 이들 [[남슬라브]]인들의 영역 모두를 남슬라브의 종주국인 세르비아가 차지해야 한다고 여겼다. 그 결과는 세르비아의 대대적인 확장으로 이어졌다. 세르비아는 두 번의 [[발칸 전쟁]]을 거치며 1913년에는 [[마케도니아]](현 [[북마케도니아]])도 병합하여 크기를 두 배로 불렸다. 여기에는 범슬라브주의의 종주국인 [[러시아 제국]]이 뒷배를 봐주고 있었다. 원래 친오스트리아적이었던 세르비아 정계는 1901년 [[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]] 국왕이 친러파들에 의해 암살되면서 점차 러시아로 기울어졌다. 이때 국왕을 암살한 이들이 바로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암살에도 관여된 [[검은 손]]이다. 세르비아 본국의 이러한 확장 열기는 오스트리아령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주민에게도 전달되었으며 세르비아 왕국은 러시아 제국과 함께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을 양면에서 서서히 포위하는 형태가 되었다.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이 느끼는 위기감은 나날이 커져 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